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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2.17 나희덕_또 하나의 옥상

또 하나의 옥상

나희덕


너에게도 이런 얼굴 있지 않을까

승천하지 못한 빗물, 검게 얼룩진 바닥 위로 기어가는
곰팡이와 이끼, 먼지를 겹입어 더 이상 투명하지 않은
유리 조각,  낡은 타이어 두어 개,  녹슨 안테나,  뒤엉킨 전깃줄

날아오를 수도 달릴 수도 없는
무엇을 비칠 수도 키울 수도 기억할 수도 없는
그런 소도구들 속에서 중얼거려 보는
쓸쓸한 무대 같은 게 있지 않을까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그러나 보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또 하나의 얼굴
또 하나의 옥상


_그곳이 멀지않다, 민음사(1997)에 수록된 시  

 


오늘 라디오에서 패티김의 은퇴 소식을 들었다. 
앞으로 내리막을 보여주기보다는 최상의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어서라는 은퇴의 이유에 사람은 누구나 마지막 모습에 대한 욕심이 있구나 새삼 확인한다. 사람들은 누구나가 이제는 닿을 수 없는 사람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기를 바란다. 정돈되고 아름다운 모습만을 보인 이 뿐 아니라,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헝클어진 구석구석까지 다 내보인 경우라도 마찬가지다. 욕심이지 싶으면서도, 그런 욕심은 참 질겨서 쉽게 떨쳐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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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무슨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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