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로 된 고요함
_심보선 

나는 나무로 된 고요함 위에 손을 얹는다
그 부드러운 결을 따라
보고 듣고 말한다
그대 기쁨, 영원한 기쁨의 지저귐이
사물들의 원소 속에 숨어 있음을 깨닫는다
하느님은 여느 때처럼 말없이
황금 심장을 가슴 속에 품고 계신다
아, 거기서 떨어지는 황금 부스러기들
그 하나하나로 집을 지을 수 있다면
유리와 불과 돌 속에서
지워질 이름이란 없을 것이거늘
쓸모를 모르는 완구(玩具)처럼
하늘의 언저리를 굴러가는 태양 아래
인간은 오래되고 희미한 기쁨의 필적들을
주워 모으는 절박한 수집광
아, 우리가 불안을 조금만 더 견뎠더라면
그것을 하느님이
조금만 더 도와줄 수 있었더라면
유리와 불과 돌 속에서
사라지는 이름이란 없을 것이거늘
나는 양손을 가슴팍 위로 거두어 모은다
망각이 그 부드러운 결을
한층 더 부드럽게 지워가며
나무로 된 고요함 아래 죽음을 눕힌다
그때 기쁨, 죽음으로부터
우연히 건너온 기쁨 하나를 움켜잡으려
나는 다시금 그 위에 손을 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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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보선 두번째 시집이 나왔다는 얘기를 들은 날 저녁, 시집을 구입했다.
첫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를 읽은 이후에 문학동네나 문학과 사회 등 계간지에 실리는 심보선의 시 몇편을 기다리며, 반기며, 만족해야했는데, 최근 두번째 시집 <눈앞에 없는 사람>이 출판된 것. 그러고보니 그의 책 제목마다 '없는'이 붙었다. 진은영이 해설에서도 말하지만 그는 눈앞에 없는 사람, 부재하는 연인에 대한 예찬자이다. 시집엔 사랑시가 빼곡하지만 그저 감상적이고 애틋한 연애담은 아니다. 그래서 체한 것 같은 상태로, 간혹 실실거리며 시집을 읽는다. 집에 있는 책들 중에 가장 많이 펼쳐졌던 책이 <슬픔이 없는 십오 초>였는데, 이제는 그의 두번째 시집을 수시로 열어볼 것 같다. "인간은 오래되고 희미한 기쁨의 필적들을 주워 모으는 절박한 수집광" 이라니, 너무 예리하고 적절해서 무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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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끝자락, 진은영의 발문을 읽으면서 아, 어쩜 이렇게 글을 잘 쓸까, 싶었다. 미술 평론에도 이런 글들을 생산해내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을텐데, 드물다. 대개의 미술평론들은 빡빡하고, 읽고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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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집 바깥에서 젊은 여자가 큰 목소리로 (동네방송하듯) 통화중이다. 내 방 창문 앞에 선 가로등이 통화하기 좋은 장소인가보다. 따지듯 화를 내며 말을 쏟아내는 저 여자는 참 열심히, 치열하게 누군가와 지금 이 순간을 살고있는 것 같다.




Posted by 무슨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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