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양복입은 직원이 집으로 방문견적 왔을 때, 여자 혼자 이사하는 것이니 이사날에는 너무 어렵지 않은 성품 좋은 직원분들을 보내달라고 부탁드렸다. 이사 전날 내가 한거라고는 자질구레한 것들을 신발상자나 천가방에 담아두고, 속옷만 따로 포장한 것 뿐이다. 엘리베이터도 없고, 그렇다고 사다리차도 들어올 수 없는 4층집에서 짐을 빼기란 일을 부탁하는 사람이나 일을 받은 사람이나 달갑지 않다. 포장이사때는 가만히 있는게 도와주는거라던데 아무것도 않고 옆에서 지켜보기가 미안스러워서 빨래건조대나 신디사이저 다리같은, 무겁지 않지만 부피가 큰 것들을 같이 날랐다. 이삿날 아침, 내 사생활이 낱낱이 이삿짐센터 직원들에게 노출되었고, 2-3시간여만에 나로 가득차있던 집이 완전히 비워졌다. 
  
집을 비우는 일은 8시반부터 시작되어 11시 정각에 모든 짐이 탑차에 실렸다. 하지만 내가 살던 집에 들어올 다음 세입자가 여태 출발 전이란다. 다음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전세금 전액을 주고, 그 돈을 집주인이 집을 나가는 내게 주기 전까지는 움직일 수 없었다. 이사는 이어달리기같아서 바톤을 받기 전까지는 발을 뗄 수가 없단다.(우선은 이동하고 그 사이에 송금해주시겠거니 싶었는데 부동산 아저씨가 정석대로 하라시기에 그 말을 따랐다.) 탑차에서 대기하고 있던 직원분들이 식사하시는 동안 세븐일레븐 편의점에 갔다. 오리온 아몬드사탕 한봉지를 사면서 저 딴동네 이사가요 인사드렸다. 편의점 아저씨는 사무실에 들어가시더니 사은품으로 보이는 컵을 하나 선물로 주셨다. 컵을 받아들고 건너편 부동산에 가서 "다음 세입자는 오는 중이래요?" 물으니 1시간은 기다려야겠단다. 갑자기 밀려오는 허기에 고등어백반집에 갔다. 늘 지나다니긴 했지만 한번도 들어가본적은 없는 네평 남짓한 작은 밥집이다. 고등어백반을 시켰다. 한쪽 유리벽에는 이 가게를 다녀간 연예인들 싸인이 가득 붙어있었다. "최진실 2006년 x년 x월"  꿈같다. 오늘은 2009년 12월인데 그새 많은 것이 사라지고, 변했구나...쏴한 마음으로 밥을 먹고 나왔다.

1시쯤 바톤을 넘겨받고 이삿짐센터 탑차에서 직원두분 사이에 끼여서 상수동으로 넘어왔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하다고 거듭 말하니 어제 이사때는 4시간을 기다렸다며 늘 있는 일이라고 말해주신다. 상수동 부동산에 가니 내가 들어가 살 집에 살던 신혼부부 역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바톤을 넘기니 집으로 들어가는 비밀번호를 알려준다. 이전에 집을 볼 때와는 사뭇 다르다. 그때는 집이 가득차있었지...짐이 다 빠지고 남은 공간은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이사를 도와주시는 분들께 덩어리가 큰 것들만 위치를 정해서 알려드리고, 마트에서 마포구 쓰레기 봉투 사서 올려보내고, 동사무소에 전입신고를 하러갔다. 600원을 내고 확정일자도 받고 뭔가 조금 더 확실해진 계약서를 들고서 동네를 훑었다. 상수역엔 자주 다녔지만 그건 홍대와 상수역 사이의 길이고, 사실상 이 주택가는 처음이다. 동네에 아무것도 없다. 이전보다는 지출이 줄어들 듯 하다. 이 동네의 첫인상은 삭막함이다.

이사는 3시 정각에 끝났다. 이사 전에 침대 위에 수건을 개어놓았는데 이 집에도 침대 위에 개놓은 수건이 그 위치에 있어서 정말 놀랐다. 안방 벽에 걸려있던 말린 장미 한송이도 그대로 왔다. 짐을 정말 꼼꼼하게 정확히 풀어주셨고, 시계도 달아주셨다. 그러고는 또 더 필요한 것 없냐셔서 "퍼펙트해요!"하고는 어서 배웅했다. 나온김에 '삭'(상수역 튀김집)에 가서 오징어 튀김이랑 떡볶이를 시켜먹었다. 탁월하게 맛있는 집은 아니지만 이미 워낙 유명해진 튀김집이다. 수업 끝나고 집에갈 때도 바로 상수역으로 들어가지않고 종종 삭에 들렀는데, 이제는 동네 주민이 되어 혼자 삭에 들어앉아있으니 새삼스럽다.  모든 것이 새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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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무슨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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