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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3.04 김억중_읽고 싶은 집, 살고 싶은 집

갓 나온 따끈따끈한 책은 어느 도서관엘 가도 대출중이라 빌리기 어렵다. 그런데 홍대 도서관에서는 뜨끈한 책이 아니라도, 전공서적은 물론 교양서적도 거의 늘 대출중이고, 대개 책 상태도 좋지 않다. 무엇보다도 책이 많이 없다. 개강하고는 예약해둔 책을 몇권 받아왔다. 그 중 하나.

한남대학교 건축과 김억중 교수님이 쓰신 건축이야기로 두가지 갈래로 구성되있다. 책의 전반부는 저자가 생각하는 공간의 미학을 키워드로 에세이처럼 풀었고, 나머지는 실천편(?)으로 몇가지 건축물, 공간을 선택해서 작품 내부에 초점을 맞춰서 꼼꼼하게 집을 읽었다. 저자가 선택한 작품 중 하나인 '절두산 순교 기념 성당'이 집 가까이에 있어 책을 읽다가 어슬렁 어슬렁 절두산 성지쪽으로 걸어갔다. 그러고보니 절두산 성지는 내가 고등학교 다닐 적에 사촌오빠랑 가본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도 상욱오빠는 사촌동생인 나를 잘 챙기고 아껴준 것 같다. 너무나 홀리했던 오빠는 고딩 조카 서울구경의 첫번째 장소로 양화진 순교지를 선택했고, 당시 나의 앞뒤없는 로망이었던 홍대 미대도 한바퀴 둘러봤었지...얼굴이 붉어진다.

절두산이라는 이름은 참 잔인하기 그지없는 이름이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는 장터나 나루터 같은 곳에서 국사범을 처형하기도 했는데 강을 바로 앞에 둔 이곳 잠두봉(절두산)에서도 역시 사형을 집행하고, 시체를 전시했다고 한다. 목을 베어 강에 내던지거나 산채로 결박해 낭떠러지 아래 강물로 던져서 신앙을 버리지 않은 자들이 얼마나 처절한 벌을 받는지 널리 보여주었다. 지난 참혹한 처형 현장을 여태 피냄새 풍기는 이름으로 두고싶지 않아서인지, 현재 정식 명칭은 '양화진'으로 사용한다. 이정표에도 '양화진'이 볼드로 크게 써있고 아래에 작게 괄호로 절두산이라고 써있다. 결국 이 곳은 개화기에 목숨을 바쳐 믿음을 증명한 이들을 기리기위해 만들어졌고, 성지에 온 순례자는 이 장소에서 그들에게 영적으로 빚진 어떤 감흥을 느끼거나, 적어도 장소의 의미만큼은 새길 수 있어야 한다는거다.

저자는 이희태의 설계로 이곳 성지에 지어진 기념 건축물이 되려 이러한 감흥을 막는다고 비판한다. 여러 이유를 제시했지만 내가 공감할 수 있었던 부분은 기념 건축물이 강요된 동선을 만들었다는 것, 오직 계획된 장소 이동만을 위한 기능적인 길이라는 것이다. 성당은 성당일 뿐이고 마당은 마당일 뿐, 순차적으로 예정된 길을 걷지 않으면 돌아나와야 하고, 연결되지 않는데다 과거의 흔적이 묻어있는 낭떠러지는 기념 건축물에 가려 한눈에 조망할 수 없다. 장소의 의미는 기념하는 건물이 서있다는 사실만으로 발현되는게 아니다. 오히려 외국인 선교사 묘지공원만 이대로 자연스럽게 가꾸고, 그 외의 공간을 빈 벌판으로 두었다면 어땠을까. 굳이 성당이 필요하다면 낭떠러지 위에 아주 작게 등대처럼(?) 지었다면 어떨까. 낭떠러지 위에 한치의 여백 없이 커다란 엉덩이로 앉아있는 기념 건축물과 달리 외국인 선교사 묘원은 좋다. 감리회, 장로회, 성공회, 심지어 한국 주류 교파에서 이단이라고 규정짓는 제7일안식일 예수재림교 선교사가 한곳에 묻혀있다. 오늘 누가 누구를 이단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각 나라마다 다른 십자가모양의 비석, 누가 다녀갔는지 곳곳에 드문드문 갓 놓여진 생화들, 어린이 묘지의 작은 무덤을 보니 내가 다른 시공간에 서있는 것 같다.
 
기념건축물, 기념비, 기념조각,,, 기념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고 좋지만 가장 근본은 무엇을 위해, 왜 기념하는가 라는 질문이 아닐까. 어떤 메시지가 누구를 향해 발신되는가 하는것 말이다. 우리나라에는 곳곳에 무시무시한 말도안되는 기념물이 많이있다. 뭐 당장 생각나는건 독립기념관에 불굴의 한국인상 같은 것...요런걸 파헤쳐보는것도 재밌을 듯. 나오는 길에 다시보니 고가전철이 성지한편을 베고 지나간다. 서울에는 많은 것들이 이질적이고 우스운 모양으로 한공간에 같이 서있는 것 같다.


겸재 정선, <양화진>, 비단에 채색, 33.3 x 24.7cm, 1742년, '양천팔경첩'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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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무슨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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