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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sangsudong 2010. 4. 29. 13:39


p선생님 강의시간에 잠시 나눈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에 대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사적인 기억으로까지 흘러갔다. 쉬는시간에 매점에서 두유랑 초콜렛을 사왔더니 강의실에서 배인숙의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노래가 흐른다. 저쪽 차원을 노니는 길고긴 이 수업시간을 버텨낼 수 있는 것은 짧은 쉬는시간에 선생님이 틀어주는 음악의 힘이 크다. 주로 첼로를 전공하는 어린 아들의 동영상 녹화 연주나, 김광석, 이치현과 벗님들, 펄시스터즈다. 이번 선곡은 최고였다. 수업과 맥을 같이하는 선곡이었다.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우연한 계기로 문득 과거의 일이 떠오르는 순간이 있다. 나는 보라색 스타치스를 보고서 순간 옛날로 돌아가본 적이 있다. 어릴 때 현관 문 옆에 늘 보라색 스타치스가 있었다. 이 꽃은 바스락거리는 것이 꼭 조화같다. 엄마와 나는 보라색 스타치스 옆에서 출근하는 아빠를 배웅했다. 나는 거기서 아빠한테 매일 뽀뽀도 하고 용돈도 받았다. 현관을 나서니 아주 작은 -자형의 화단도 아주 자세히 기억이 났다. 가장 왼쪽에 있던 것은 가장 키가 컸고, 중간에 낮게 심겨있던 커다란 잎뿐인 식물의 이파리에는 하얀 점이 있었다. 그건 나무가 병이 걸려서 아파서 그렇다는 말에 그 흰 점이 없어지기만을 기다렸던 기억도 난다. 화단을 지나 녹색 대문을 나서면 대추나무와 석류나무를 키우는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가 사는 집이었는데, 그때 할머니가 주셔서 처음 먹어본 덜익은 연두색 대추맛과 냄새, 석류맛, 그리고 그 할머니 얼굴도 생생하게 생각난다. 지금 길을 가다 마주쳐도 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아주 오래전 기억이다. 무의식 속에 있었지만 한번 불러낸 기억은 다시 꺼내기 쉬웠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기억에 잠시동안은 과거를 살게된다. 현재도 아니고 과거도 아닌, 시간 밖의 시간에 다녀오는거다. 요즘에는 그런 일이 잦다. 그래서그런지 이 노래가 참 좋다. 먼 미래에 이노래를 우연히 다시 듣게된다면, 아마 p선생님의 강의시간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싶다.

 

*

누구라도 그러하듯이가 리메이크곡이라는걸 처음 알았다.
원곡은 Alain Barriere의 Un poe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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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무슨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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