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철학특론

sangsudong 2009. 4. 8. 23:36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수요일 수업 '해석철학특론', 사실 수업 타이틀만 들어서는 뭐하는 수업일까 싶다. 거부감을 주는 수업명임에는 틀림없다. 이런 지루한 이름을 가졌음에도 나는 수요일의 이 수업이 가장 좋다. 이 수업시간에는 들뢰즈의 '감각의 논리' 를 읽는다. 수업의 목표는 '나 들뢰즈 책 읽었어' 가 아니라 예술을 다룬 철학 서적을 독파하는 것, 그리고 들뢰즈의 글을 읽는 방법을 공유하는 것이다. 업데이트도 잦지 않은 내 블로그에 '소고기 미역국 맛있게 끓이는 법' 같은 글이 아니라 웬일로 수업에 대한 글을 쓰고픈건, 다 나름 이유가 있지 않겠나.

수업을 이끌어가시는 박정태 선생님의 수업방식이나 사물을 대하는 시각, 그리고 과제를 내주실 때의 태도가-선생님께 '태도'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맞지 않는 듯 하나 적절한 것이 떠오르지 않는다-내 마음을 동하게 함이다. 수업진행하실 때 너무 반복하신다 싶기도 하지만,, 그 반복 조차도 좋다. 혼자서 책을 읽으면서는 종종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에 '이제는 조금 알겠다' 싶어지는 절정의 순간이 오면, 선생님의 자상한 도움에 사무치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나홀로 감각의 논리 1장을 읽기시작했다면 한두페이지 못미쳐 바로 덮어버리고서, 영영 다시 읽기를 시도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최근 수업에서는 선생님이 신실한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는데 학생들 앞에 서는 영향력 있는 분이, 그 중에서도 이렇게 성품 좋으신 분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실과 그것을 수업 중간중간에 내비쳤다는 사실에 나는 기뻐했다.

쉴틈없이 쏟아내시는 선생님의 강의는 3시간으로 2시에 시작해서 5시에 끝나는데, 속쓰리게도 5시 정각에 마치거나 5시를 조금 넘기기도 한다. 아직 4시 50분 이전에 수업을 끝내주신 적은 단 한번도 없다. 그럼에도 이 수업에 사랑과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선생님이 쉬는시간이 끝난 뒤 짧은 시간동안 보여주시는 영상 또는 사진 때문이다. 그것은 프랑스에 있는 아들 보근이를 포함한 나머지 가족들의 근황이다. 첼로를 배우고 있는 아들-선생님은 이 아들을 '쁘띠 보근'이라고 칭한다-의 동영상을 매 수업시간마다 보여주시는데, 우리는 덕분에 매번 업데이트 되는 첼로 연주를 감상하고, 연주가 끝나면 모두 박수를 친다. 멀리 프랑스에 있는 아들을 보고싶어하고 사랑하고 자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느끼면서 나는 또 혼자서 엉뚱하게도 고향의 가족과 미래의 내 가정을 생각하기에 이른다. 한번은 보근이의 첼로 연주에 울컥 해서 말도안되게 눈물이 날 뻔도 했다.

선생님이 수업시간마다 5분여 당신의 아들 연주 동영상을 보여주시는 건 사실 별것 아닌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간단한 이벤트는 결국 선생님 삶의 일부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아들의 첼로 실력이 날로 늘어가고, 우리는 그것을 함께 지켜보고 박수쳐주고,, 나는 들뢰즈 읽기만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 한 인간의 그리움과 가족사랑을 함께 공유한다. 그저 지식을 전달하는 강사와 얻어가는 학생의 관계가 아닌 것이다. 수업 내용이 마냥 쉽지 않음에도 그 수업시간마다 무작정 편하고 따뜻함을 느낀건 아마도 그때문일거다. 멋진 선생님, 그리고 매주 기다려지는 수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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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무슨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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