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탁구 4월호에 내 글이 실렸다. 이전에 고슴도치에 끄적거렸던건데 반응이 좋기에(??!) 따뜻한 편집팀에서도 환대해주었다. '김가명'이라는 이름으로 보냈는데 진짜 이름이냐고 다시 물어와 가명 사용을 거절당했다. (진짜 이름이라고 우겼어야 하는데 쉽게 이실직고했다.) 그래서 결국 잡지 지면에는 실명이 들어갔다. 써내야할 글이 많은데 자발적으로 딴짓을 하고있다. 우리나라에 하나뿐인 탁구잡지 '월간탁구', 번창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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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부터 탁구에 빠져있다. 탁구를 치기 전에는○○탁구장'이라고 붙은 간판을 본 적도, 매일같이 지나다니는 길목에 탁구장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 마치 자전거를 사고 싶을 때면 길거리에 지나가는 모든 자전거들이 눈에 쏙쏙 들어와 박히는 것처럼, 탁구에 재미가 들린 후 부터는 어느 동네를 가든 탁구장 간판이 눈에 들어오는거다. 사람 눈에는 자기가 필요한 것, 관심있는 것만 보인다더니 그 말을 실감하고 있다.


탁구장은 대개 지하나 엘리베이터가 닿지 않는 3, 4층에 있다. 한계단 한계단 탁구장에 다가설수록 핑 퐁 핑 퐁 탁구공 소리가 들리는데, 그 소리가 가까워지는게 묘하게 기분이 좋다. 어떤 때는 그 소리가 너무 좋아서 탁구장 문 앞에 서면 머리가 쭈뼛 서는 것만 같다.


탁구장에 들어서면 알 수 있다. 이미 잊혀진,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어떤 것이든 그 안에는 그것을 가꾸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말이다. 탁구장 문을 열면 어릴 적 보던 만화영화에서 처럼, 돈데크만이 나를 다른 시공간에 데려다 준 것 마냥 묘한 기분이 든다. 어색하리만치 밝은 형광등, 화려한 색색의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 땀냄새가 뒤섞인 습한 공기. 아마 8,90년대의 풍경과 한치도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길거리의 사람들은 지하에 이런 세계가 있다는걸 알기나 할까. 이 세계에 갓 발을 들여놓은 나는 누구나 알지 못하는 어떤 비밀한 것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이 내심 좋았다.


탁구를 치고 싶다'는 다소 강하고 구체적인 생각은 내가 어른이 되고난 뒤의 일이다. 나는 아주 어릴 적 교회에서 탁구를 알게 됐다. ‘알게 됐다'고 표현하는 것은 탁구를 치기보다는 지켜보기만 했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주일마다 종종 교회에서 탁구를 쳤다. 초록색 탁구대를 사이에 두고 마주선 두 남녀는 상기된 얼굴로 즐거워했고, 둘의 랠리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어린 나와 눈을 맞추기도 했다. 내 부모가 서로 사랑하고 즐거워하던 풍경, 하얗고 가벼운 공이 테이블 위에서 내는 경쾌한 소리. 어릴 적 부터 내 눈에 새겨진 탁구 치는 풍경은, 그래서 행복하고 따뜻한 것이었다. 내게 탁구는 흰 공에 써있는 ‘Peace'라는 영어 단어 그 자체로 각인되어 있었나보다. 이전까지 한번도 탁구채를 잡아본 적 없지만 마음이 번잡하고 힘들 때면 왠지 탁구를 치고싶다는 생각이 드는거다. 탁구를 치면 어지럽던 마음에 평화를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 무렵, 박민규의 소설 <핑퐁>을 읽은 것도 순전히 제목 때문이었다. 탁구공처럼 보이는 수백수천개의 작은 점으로 뒤덮인 책 표지, 그리고 핑퐁이라는 제목. 물론 소설 핑퐁은 내 머릿속의 핑퐁과는 전혀 다른, 저릿저릿한 것이었지만. 어쨌든, 탁구를 치고싶다는 생각 위에 박민규의 소설이 더해지고부터 나는 탁구장을 찾았고, 그날로 레슨비를 치렀다. 처음으로 라켓을 잡고 어정쩡한 기마자세로 서있는 내게 관장님은 첫 석 달만 잘 넘기면 계속 탁구를 칠 수 있을 거라고 하셨다. 나는 무사히' 석 달을 잘 넘겼고, 여섯달 째 되는 날 라켓을 샀다. 그러고보니 그 소설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주인공인 모아이가 라켓을 사러가는 부분이다. 소설책을 오랜만에 다시 펼쳐보니 자신의 라켓을 갖는다는건 자기 의견을 갖는다는 거야라는 탁구용품점 주인의 말에 흐리게 밑줄이 그어져있다.

 

나는 라켓은 가졌으나 의견'이라는걸 가질만큼 탁구를 잘 치지 못해 아직은 그 말을 잘 이해할 수 없다. 그래도 핑퐁의 가장 큰 매력은 몸을 숙여 저편의 서브를 기다리는 자세라는 작가의 말에 공감한다. 탁구장 구석에 앉아 사람들이 탁구치는걸 보고 있으면, 한방에 내리치는 스매시나 드라이브보다 서브를 기다리는 자세가 가장 멋지다. 어떤 것을 기다리는, 약간의 긴장을 가진 자세. 자세를 갖추고 기다리면 분명 공이 온다는 것도 고마운 일이다.

 

처음 탁구장을 찾았을 때 기대한 것처럼 나는 막연한 그 평화라는 것을 찾았을까? 마냥 흰 물체로만 날아오더니 날아오는 공을 감싼 Peace 마크가 내 두 눈에 또렷이 보일 무렵, 내가 찾으려 했던 그것은 늘 있어왔고 보고자 마음을 쏟으면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지금도 막, 눈 앞에 공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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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탁구를 치고, 혼자서 탁구를 좋아하다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만났을 때의 반가움과 기쁨이란 생각보다 컸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런 기쁨을 안겨준 홍익대학교 탁구부 HITTC 모두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내게는 우연하고 소중한 즐거움이었다. 2012년 새학기에는 탁구장이 여자 신입생들로 북적이는 축복이 있기를!  (글, 그림. 김가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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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무슨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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