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아니길

sangsudong 2010. 11. 12. 01:07
딱 한달만에 서울로 돌아왔다. 여행을 다녀오면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잠깐의 각성이 있게 마련인듯. 혼자한 여행이라 모든 일정이 자유로웠고, 혼자 있을 시간 또한 넉넉했기 때문에 여행중에 잡생각이 많았다. 서울에 돌아와서는 여행지에서 만나 도움을 받거나, 같이 시간을 보낸 사람들에게 잘 도착했다는 안부메일을 보내고, 사진을 정리하고, 남은 시간에는 아침 저녁으로 잠만 잤다.  

정말 원했기 때문에 저가항공을 타고 도시간 이동하며 들른 전시도 있었고, 실은 그리 원하지 않았지만 가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책임감(?)때문에 간 전시도 있다. 사실 전시실을 걷는 것 보다 마냥 길바닥을 걷는게 더 좋긴 했다. 가는 곳마다 좋은 만남이 있었고, 감사했다

여행 중에는 노트에 짧디 짧은 일기와 가계부 따위를 썼는데 로밍해간 폰이나 랩탑을 두고 계속 노트를 찾게되는지, 핸드폰에 일정 기입하는 프로그램이 있는데도 습관적으로 노트를 꺼내 썼다. 2011년에도 매해 쓰던 같은 다이어리를 구입할 것 같다. 노트에 글을 쓸 때 마다 난 내가 가진 스마트폰을 100 만큼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스마트폰을 갖게된 이후 이메일과 각종 메시지들을 바로 확인할 수 있어 정말 좋지만, 가끔은 이러한 정보들과 메시지들을 즉각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굳이 내게 필요한 것일까, 가끔은 과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고민하다 가져간 넷북은 정말 유용했고, 와이파이를 잡기위해 맥도날드에 자주 가야했던 상황은 달갑지 않았지만 테이블마다 꽃 한송이씩 꽂아놓은 수줍은 맥도날드였으니 나쁘지 않았다. 다른 커피집이나 레스토랑에 비해 와이파이도 조건없이 쉽게 잡히고 빨라서 인터넷을 써야할 때면 자연히 노란 사인을 찾게됐다.

또 쓸데없이 길어진다. 이번 여행은 '사람복-전시전시전시-먹을복' 세개의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couchsurfing.com 덕을 톡톡히 봤다. 카우치서핑은 인류의 인터넷 사용 이래 최고의 아이디어인 듯.

벌써 11월이다. 논문 전, 일하기 전 마지막 여행이라 생각하고 다녀왔지만 끝이 아니길. 언제든 떠날 수 있길. 여행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더 쉽게 떠날 수 있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정확히 말하면 아예 없거나, 아예 많거나. 나는 물론 전자.


*
파리에서 본 한국여자는 대개 루이비통 로고 백을 들고 있었고, 런던에서 본 한국여자는 대개 루이비통 백과 더불어 버버리 코트를 입고 있었다. 한둘이 아니라 도시 여기저기에서 동양여성들 사이에서 너무나 일관적인 패턴으로 반복됐기 때문에 재미있었다. 아래 이미지는 그냥 버버리 하니 생각나는 김상길 사진 작업, 오프라인 시리즈 중 버버리 동호회.  이번 2010 광주비엔날레서도 입구쪽에 전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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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무슨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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