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강

poetry 2010. 6. 17. 18:49
예전에 유명 블로거 **w님은 어느 새벽, 술김에 많은 사람들이 구독하는 자신의 블로그에 아주 프라이빗한 사건과 심상을 갈겼다. 아침에야 정신을 차리고는 수만명 앞에서 발가벗은 기분에 창피함을 느꼈는지 글은 몇시간만에 삭제되었지만, 새벽잠 없는 많은 이들이 보고 그를 비난하거나, 반대로 인간적 연민을 던져준 적이 있다.

대개의 경우, 늦은 밤의 일기장 같은 기록은 감상에 절어 있을 때가 많고 다음날 아침 작성자에 의해 삭제된다. 나도 간혹 터질듯한 마음을 안고 개인적인 고민 가득한 글을 갈겼다가 아침에야 내가 미쳤지를 연발하며 글을 지운 적이 있다.

쏟아지는 말들에 비례해 풀어낼 곳도 많다. 하지만 정작 하고싶은 말은 하지 못한다.
복두장이가 대나무숲에서 임금님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친것처럼
화양연화에서 양조위가 앙코르와트 사원의 오래된 돌 틈에 이야기를 남기고 흙으로 막았던 것처럼
풀어놓지 않고는 죽을똥 싶은 말들이 쌓여간다.

혼자서 돌 틈에 이야기하고 흙으로 막기에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아쉽고,
대나무밭에서 외치려니 그 소리가 댓잎을 타고 나와 익명의 다수에게 퍼져나가니
이도 저도 못미덥다.

블로그나 트위터에서는 폼나게 기사 링크만 남겨놓거나 영양가 있는 정보만을 기록하고 싶지만
나는 이야기를 품었다가 내놓았다가 후회하는 '짓'을 반복할 것 같다.
촌스럽고 못미더워도(쓰고보니 노래가사 ;;) 이야기 할 구멍이 필요하니, 외칠 숲이 필요하니.

다들 말을 안고 산다.
나도 하고싶은 말이 많다.

생각나는 시 한편 첨부한다.


황인숙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자명한 산책』,문학과 지성사, 2003





Posted by 무슨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