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태, 개념어사전, 들녘, 2006.
요즘 곁에 두고 제일 자주 뒤적거리는 책이다. 구입 적극 권장한다.
이분이 쓴 다른 책들도 이해하기 쉽고 재밌다.
개념(concept)p.22-24
"내용 없는 사유는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순수이성비판)
칸트의 이 유명한 문구는 당시 인식론 철학의 주요한 두 가지 조류였던 합리론과 경험론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었다. 대륙을 무대로 전개된 합리론은 인식 주체를 강조했고 영국에서 발달한 경험론은 인식 대상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 따라서 합리론은 사물에 대한 인식을 주로 정신 활동의 결과라고 본 반면에 경험론을 사물에서 전해진 감각자료에 대한 경험이 곧 인식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칸트는 합리론적 전통을 내용 없는 사유라 일축하고, 경험론적 전통을 개념 없는 직관이라고 비판했다.
철학에서 말하는 개념은 인식 과정에 개입하는 관념의 의미와 연관된다. 하지만 다른 학문들에서는 개념이 이론을 전개하는 주요한 도구로 사용된다. 이론은 개념들을 논리적으로 엮은 체계라고 볼 수 있다. 물리학은 힘, 운동, 미립자 등의 개념들을 사용하는 이론 체계이고 경제학은 생산, 이윤, 금리 등의 개념들로 이루어진 이론 체계다.
일반적으로 말해 개념들을 올바로 구사하면 정확한 이론을 구성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론에 따라 같은 개념이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도 많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자유주의 사회학에서는 중간계급middle-class이라는 개념을 사회 안정에 필수적인 계급이라는 뜻으로 사용하지만, 마르크스주의 사회학에서는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 사이에서 동요하다가 결국 어느 한 측에 귀속되어 사라질 계급으로 본다. 국가라는 개념도 사회가 발전하기 위한 필수적인 기구로 보는 긍정적인 입장이 있는가 하면 지배집단의 의도를 실현하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보는 부정적인 입장도 있다.
이렇게 같은 개념을 두고 다른 의미로 사용하는 학자들이 함께 세미나를 한다면 생산적인 토론은커녕 기본적인 의사소통부터 문제가 될 것이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토론에 임하거나 논문을 쓸 때 먼저 자신이 사용하는 개념들을 명확히 규정하기도 한다. 어떤 개념을 기존의 의미와 다르게 사용할 경우에는 미리 그 개념의 정의를 새로 내릴 수도 있다.
개념을 정의하기란 쉽지않다. 사회과학만이 아니라 자연과학에서도 완전히 객관적인 개념이란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개념을 객관적으로 사용하려 하고 또 자신을 그렇게 한다고 확신해도 개념의 정의에는 그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선입견이 개재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특정한 개념의 의미를 알고자 할 때는 반드시 그 개념이 사용된 맥락 또는 이론체계를 고려해야만 한다.
관념론(Idealism)p.43-45
탁상공론이라고 해서 반드시 탁상에서만 하는 것은 아니듯이 관념론도 그 말처럼 좋은 아이디어 idea 와 관련된 개념은 아니다. 오히려 상식적으로 말하는 관념적 사고란 탁상공론처럼 현실적 조건과 무관하고 별로 실효성이 없는 생각을 가리킨다. 하지만 관념론의 의미와 역사를 보면 그런 오명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관념론은 말 그대로 관념idea를 중시하는 철학적 사유의 방식을 가리키는데 그 반대의 개념을 보면 의미를 더 확연하게 이해할 수 있다. 관념론의 반대는 두 가지로, 존재론적으로는 유물론materialism이고 인식론적으로는 실재론realism이다. 유물론은 물질이 세계의 근본이라고 보는 관점이며 실재론은 인식 대상이 우리의 의식과는 독립적으로 실재한다고 보는 관점이다. 그러므로 관념론은 그 두가지의 반대, 즉 물질이 아니라 관념을 세계의 근본으로 간주하고 인식 대상이 의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는 사유 방식이다.
철학적 관념론이 특히 강세를 보인 시기는 18-19세기 칸트, 피히테, 셸링, 헤겔로 이어지는 독일 관념론의 시대였다. 칸트는 인식 주체가 수동적으로 대상을 인식하는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대상을 구성한다는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을 시도했으며, 헤겔은 절대정신이라는 독보적인 관념이 세계와 역사의 기원이자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헤겔은 그런 관념론을 토대로 근대 형이상학을 종합하고 완성했다. 그러므로 이후의 철학은 모두 헤겔 철학을 비판하면서 새 출발을 다짐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이것이 현대철학의 시작이다. 신학자였던 포이어바흐는 헤겔의 절대정신을 사실상 신의 부활이라고 간주하면서 헤겔을 거꾸로 뒤집어야 한다고 말했으며 마르크스는 그 논지를 이어받아 헤겔의 보수성을 지적하고 그의 관념론을 유물론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사회주의 이념의 철학적인 변증법적 유물론을 정립했다.
관념은 물질 앞에 무력한 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때로는 관념의 힘으로 물질의 힘을 극복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관념과 이념은 호환성이 있는 개념인데-영어 표기가 둘 다 똑같다- 역사에서는 이념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친 위인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요즘 곁에 두고 제일 자주 뒤적거리는 책이다. 구입 적극 권장한다.
이분이 쓴 다른 책들도 이해하기 쉽고 재밌다.
개념(concept)p.22-24
"내용 없는 사유는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순수이성비판)
칸트의 이 유명한 문구는 당시 인식론 철학의 주요한 두 가지 조류였던 합리론과 경험론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었다. 대륙을 무대로 전개된 합리론은 인식 주체를 강조했고 영국에서 발달한 경험론은 인식 대상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 따라서 합리론은 사물에 대한 인식을 주로 정신 활동의 결과라고 본 반면에 경험론을 사물에서 전해진 감각자료에 대한 경험이 곧 인식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칸트는 합리론적 전통을 내용 없는 사유라 일축하고, 경험론적 전통을 개념 없는 직관이라고 비판했다.
철학에서 말하는 개념은 인식 과정에 개입하는 관념의 의미와 연관된다. 하지만 다른 학문들에서는 개념이 이론을 전개하는 주요한 도구로 사용된다. 이론은 개념들을 논리적으로 엮은 체계라고 볼 수 있다. 물리학은 힘, 운동, 미립자 등의 개념들을 사용하는 이론 체계이고 경제학은 생산, 이윤, 금리 등의 개념들로 이루어진 이론 체계다.
일반적으로 말해 개념들을 올바로 구사하면 정확한 이론을 구성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론에 따라 같은 개념이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도 많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자유주의 사회학에서는 중간계급middle-class이라는 개념을 사회 안정에 필수적인 계급이라는 뜻으로 사용하지만, 마르크스주의 사회학에서는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 사이에서 동요하다가 결국 어느 한 측에 귀속되어 사라질 계급으로 본다. 국가라는 개념도 사회가 발전하기 위한 필수적인 기구로 보는 긍정적인 입장이 있는가 하면 지배집단의 의도를 실현하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보는 부정적인 입장도 있다.
이렇게 같은 개념을 두고 다른 의미로 사용하는 학자들이 함께 세미나를 한다면 생산적인 토론은커녕 기본적인 의사소통부터 문제가 될 것이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토론에 임하거나 논문을 쓸 때 먼저 자신이 사용하는 개념들을 명확히 규정하기도 한다. 어떤 개념을 기존의 의미와 다르게 사용할 경우에는 미리 그 개념의 정의를 새로 내릴 수도 있다.
개념을 정의하기란 쉽지않다. 사회과학만이 아니라 자연과학에서도 완전히 객관적인 개념이란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개념을 객관적으로 사용하려 하고 또 자신을 그렇게 한다고 확신해도 개념의 정의에는 그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선입견이 개재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특정한 개념의 의미를 알고자 할 때는 반드시 그 개념이 사용된 맥락 또는 이론체계를 고려해야만 한다.
관념론(Idealism)p.43-45
탁상공론이라고 해서 반드시 탁상에서만 하는 것은 아니듯이 관념론도 그 말처럼 좋은 아이디어 idea 와 관련된 개념은 아니다. 오히려 상식적으로 말하는 관념적 사고란 탁상공론처럼 현실적 조건과 무관하고 별로 실효성이 없는 생각을 가리킨다. 하지만 관념론의 의미와 역사를 보면 그런 오명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관념론은 말 그대로 관념idea를 중시하는 철학적 사유의 방식을 가리키는데 그 반대의 개념을 보면 의미를 더 확연하게 이해할 수 있다. 관념론의 반대는 두 가지로, 존재론적으로는 유물론materialism이고 인식론적으로는 실재론realism이다. 유물론은 물질이 세계의 근본이라고 보는 관점이며 실재론은 인식 대상이 우리의 의식과는 독립적으로 실재한다고 보는 관점이다. 그러므로 관념론은 그 두가지의 반대, 즉 물질이 아니라 관념을 세계의 근본으로 간주하고 인식 대상이 의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는 사유 방식이다.
철학적 관념론이 특히 강세를 보인 시기는 18-19세기 칸트, 피히테, 셸링, 헤겔로 이어지는 독일 관념론의 시대였다. 칸트는 인식 주체가 수동적으로 대상을 인식하는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대상을 구성한다는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을 시도했으며, 헤겔은 절대정신이라는 독보적인 관념이 세계와 역사의 기원이자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헤겔은 그런 관념론을 토대로 근대 형이상학을 종합하고 완성했다. 그러므로 이후의 철학은 모두 헤겔 철학을 비판하면서 새 출발을 다짐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이것이 현대철학의 시작이다. 신학자였던 포이어바흐는 헤겔의 절대정신을 사실상 신의 부활이라고 간주하면서 헤겔을 거꾸로 뒤집어야 한다고 말했으며 마르크스는 그 논지를 이어받아 헤겔의 보수성을 지적하고 그의 관념론을 유물론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사회주의 이념의 철학적인 변증법적 유물론을 정립했다.
관념은 물질 앞에 무력한 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때로는 관념의 힘으로 물질의 힘을 극복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관념과 이념은 호환성이 있는 개념인데-영어 표기가 둘 다 똑같다- 역사에서는 이념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친 위인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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