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sangsudong 2010. 6. 2. 22:14


나는 참 좋은 곳에 산다. 한강으로 나가는 나들목까지 걸어서 10분이 채 되지 않아서 마음만 먹으면 매일 강에 나갈 수 있다. 주로 아침에 달리지만 해질무렵 저녁에도 달린다. 저녁에 강에 나가면 가끔은 사람이 너무 없어서 등 뒤가 서늘하니 무서운 구역이 있기도 하다. 또 저녁에는 날벌레가 많아 꼭 한마리 이상 흡입하게 된다. 입을 꼭 다물고 달려야한다. 그래서 늦은 저녁보다는 아침에 달리는 것이 좋다.

오늘은 아침에 늦잠자고 투표하고 왔더니 이미 해가 떠버려서 저녁에 달렸다. 공휴일이라 사람이 엄청 많다. 잔디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는 연인, 기타치며 노래하는 학생들, 잔디 위에 쳐놓은 텐트들, 공휴일인데다 날씨까지 좋아 그런지 한강 잔디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보는건 오랜만이다. 

달리기는 늘 서강대교에서 지점에서 시작해 성산대교지점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코스다.(코스라고 하기도 무안하다.) 몇키로인지는 모르겠지만 러너들에게는 몸풀기 정도의 단거리 코스일 것이다. 왕복으로 달리면 딱 1시간이라 내게는 적당하다. 그나마 처음 달릴 때는 고작 눈앞에 보이는 다리 하나에 닿기까지 몇번을 멈췄는데 이제는 한번도 쉬지 않고 왕복할 수 있게되서 내심 뿌듯하다.

서른 두살부터 여태 꾸준히 달리기하는 하루키는 매일 조깅할 때 마다 마주쳤던 멋진 아가씨와 눈인사를 주고받는 재미가 있었다는데, 아쉽게도 나는 그런 재미는 전혀 없다. 지나가는 사람 구경, 자전거 구경, 국회의사당의 불켜진 방을 상상하는 정도다. 앞만보고 아무생각 하지 않고 달리지만 눈에 띄는 사람, 물건, 건물이 있으면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온다.

낚시대를 6개나 디스플래이해놓고 낚시하는 아저씨, 과연 잡아올린 물고기를 집에가서 먹으려는 걸까, 아니면 한강에도 물고기가 산다는걸 확인하고 싶은 걸까, 삐까뻔쩍한 자전거를 타고 가볍게 쌩 지나가는 아저씨, 아 나 힘들어 저 자전거 뺏아서 타고싶다, 저멀리 아픈다리로 절뚝거리며 재활 운동하는 학생, 앞서 달려가기 미안하다, 하이힐 신은 여자와 손잡고 걷는 남자, 아직 어색한 사이군 흐흐, 두상이 예쁜 하얀 아이, 나도 저런아이를 낳고 싶다. 평화롭다. 우리나라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음악도 아무생각 없이 듣고있지만, 귀에 꽂히는 순간이 있다. 꽂히는 가사에 지난 생각을 하거나 제목을 확인하기도 한다. 달리기하는 시간에는 평소에 잘 듣지 않는, 비트가 있는 음악을 주로 들으니 편식하지 않게되서 좋다. 지난주에는 내내 DJ soulscape의 앨범 <창작과 비트>, <lovers>만 틀어놓고 달렸다. 창작과 비트라니, '창작과 비평'에서 한글자만 바꿨는데 이리 다를까. 의도한건지 알 수 없지만 재치있다. 금도가 꽤 전에 소개해준 아티스트인데 내가 달리기를 하지 않았으면 아마 영 듣지 못했을 음악일거다. 

*
달리는 행위가 하루 세끼 챙겨먹는 것이나, 잠자는 것처럼, 내 생활속에 '완전히' 흡수되기를 기대한다. 
**
내가 뽑은 사람이 당선되는건 기대하지 않는다. 안될걸 알면서도 표를 던진다. 이 표가 당선으로 연결되진 못해도 제 역할은 할테지.







 

'sangsudo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I like watching you go_검정치마  (0) 2010.06.12
Pat Metheny  (2) 2010.06.04
안과가는 길에  (9) 2010.05.12
일요일, 의릉의 봄  (10) 2010.05.06
너의 결혼식/ 나의 몽상  (4) 2010.05.02
Posted by 무슨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