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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마을

무슨달 2011. 8. 12. 20:49

아버지 생신이라 오랜만에 부모님댁에 다녀왔다. 아버지 생신이라고 집에 간건 손에 꼽히는데, 이번이 아마 대학때 이후로 세번째가 아닌가 싶다. 생신날 얼굴을 뵙는 대신 전화를 드리거나, 작은 선물을 사서 우체국 등기로 보냈다. 겉으로는 사이 좋아 보이겠지만, 아버지와 나 사이엔 크고 높은 담이 있다. 내가 어느정도 나이가 들고부터 스스로 내린 선택과 결정에 아버지와 부딪히면서 그럴 때마다 크게 멀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서로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이 서툴렀던 것인데 불필요한 감정노동이 많았고, 크게 상처받았다.

아버지를 사랑하고 이해하려 하면서도 말할 수 없이 '미워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아버지의 싫은 모습을 내가 그대로 닮아있는 것을 보았을 때, 더욱 미워하게 된 것 같다. 내 마음을 추측하듯, 그것도 과거형으로 말하는 것은 '미워한다'고 단정하며 현재형으로 쓰기엔, 그래도 죄송한 마음이 들어서다. 실제로는 한번도 대든 적 없지만, 마음 속으로는 늘 반박했고 못마땅했다. 아버지만 생각하면 웃다가도 울게된다. 희한하게 그런 사이가 되어있었다. 어쨌든, 커다란 대통령같은 아버지도 서툴고 작은 인간이고, 나도 서툴고 어리석은 딸이란 것을 알고난 뒤, 이미 손 쓸 수 없을 만큼 사이가 악화되고 난 뒤에야 아버지가 마음에 쓰였다. 이번 생신을 빌어 딸인 내가 먼저 안아드려야지 싶었다.

크리스천들은 대개 각자의 문제를 골방에서 기도하면서, 기도로 그것이 회복되리라 믿고 바라는 경우가 많다. 물론 기도는 중요하지만, 실제 생활에서 직접 극복하려는 노력이 생략된 채 오직 기도만 한다는게 문제다. 직접 다가서기 겁나니까. 이제는 겁내지 않기로 한다. 앞으로는 기도도 하고, 실천도 하기로 한다.

부엉이 바위 산에 올라 이런 내 아버지와의 여러 사건들을 모두 곱씹어본다. 모든 것들이 이미 다 되돌릴 수 없는 과거가 되었지만, 아버지와 나의 관계만큼은 회복할 수 있는 현재와 미래의 것이더라. 난 효녀도 아니고, 아버지를 위해 살지도 않지만, 딸로서의 역할을 포기할 수는 없다. 우리 사이의 서툰 대화법은 앞으로도 변함없을테지만 그것에 대처(?)하는 나의 자세는 조금 덜 어리석고, 더 의연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의 이러이러하고 저러저러한 서운하고 미운 마음을 바위 아래로 털어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두 명의 바보 대통령을 위해!


*봉하마을에 가거든 아래에만 있지말고 정토원이 있는 곳까지 올라가보길. 치마에 플랫슈즈를 신은데다, 날씨가 너무 더워 오를까 말까 고민하다가 산에 올랐는데 오르길 잘했다. 산이 높지 않아 그저 몇분(?)이면 절에 닿는데 부는 바람에 땀을 식히면서 봉하마을 전체를 내려다보니 참 좋다. 정토원 마당에는 100년묵은 배롱나무가 있고 개 몇마리, 닭 몇마리를 그냥 풀어놓고 기르는데 절 마당을 후리고다니는 기세등등한 수탉이 인상적이다. 밥먹을 때 보니 그 수탉 앞에서는 개들도 꿈쩍 못하더라. 눈에 검정색 얼룩이 있는 강아지가 있었는데, (아래서 네번째 사진) 절에 계신 아주머니가 그녀석을 부르는 이름에 배를 잡았다. "야! 눈티밤티!" (서울사람들은 못알아듣겠지. 해설: 눈탱이 밤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