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gsudong

주일이 다가온다.

무슨달 2011. 2. 17. 23:30

내 사랑하는 친구들이 각자의 종교와 가치관 아래 살고 있는 것을 진심으로 존중한다. 그저 가끔 하나님을 믿는 크리스천 친구가 몇 없다는 것에 대한 외로움이 있을 뿐이다. 청년이 된 이후, 청년부 공동체에 속하지 않고 주일학교 교사만 해왔기 때문에 믿는 또래가 없기도 하거니와 어쩌면 스스로 크리스천 청년들로부터 벽을 쌓아온 것일는지도 모르겠다. 청년부 공동체가 뭔지모르게 억지스럽고 불편했다. 실은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의 모습을 다른 크리스천 청년들을 통해 마주하고 확인하는 것이 불편했던 것일지도.

미술제도 비판 관련 논문을 위한 참고문헌들을 읽다보니, 문득 한국 교회가 백색의 모더니즘 미술관과 꼭 닮았더라. 외부의 요소는 철저히 배제된, 순결하고 티끌하나 없는 공간으로 가공된 백색의 화이트큐브말이다. 이곳에서는 금테 액자 속 작품과 이를 돋보이게 해줄 인공조명 외에 다른 요소들은 눈에 보이지 않아야 한다. 공간을 지나는 가스배관, 건물의 기둥, 바깥에서 들어오는 햇빛 한점까지 죄악시되어 감춰져야하는 것이 마치 지금 한국의 교회같다. 보여주고자 의도된 것만 존중되고 나머진 모두 배제되는 공간에서는 인간 개개인의 맥락과 상황, 다름과 모자람이 인정되고, 어우러지기란 쉽지 않다.
 
참신앙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고자 노력하기보다는 교회 안에서 자기 의를 세우려하거나, 신앙생활의 멘토였던 이 조차 그리하는 것을 목도하게된다. 또 한가지 불편한 것은, 교회 내에서 충성스럽게 성실히 일하는 것을 신앙의 크기와 동일시 하는 것이다. 이때, 대개의 경우, 결국에는 자신이 교회에서 일한 것이 자신의 영광으로 드러나고, 보상되기를 바라는 실수를 하게된다.

신앙생활에도 관성이란게 있어서 계속 살피고, 마음을 쓰고,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믿는 목적이 다른 곳을 향하게 되는 것 같다. 살을 빼고자 할 때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하더라도, 이후 오랜 시간동안 바뀐 생활 습관과 마음가짐을 유지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몸은 이전의 몸을 기억하고 다시, 아주 쉽게, 과거의 몸상태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한국의 교회들에도 속속 대안이 생겨나고 본받을만한 시도가 분명 있지만, 오늘의 대안이었던 것이 과거로 거슬러 가는 것은 금방이다. 그러니 늘 생각과 마음을 지켜야 한다. 헤이해지면 번갈아 깨어있어야 할것이다. 그렇기때문에 신앙생활은 혼자서 지켜나가기 어렵다. 같이 신앙생활 해보자고 교회에 가면, 신앙을 지키기가 더 어려우니 OMG!

김규항이 트위터에서 요즘 크리스천들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고 하더라. 다분히 억지스럽지만 공감할 만하다. 가끔은 내가 크리스천이 아니었더라면, 기독교 가정에 태어나 이를 물려받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교회에 다니지 않고도, 성경읽고, 기도하고, 나를 사랑하고 이웃을 내몸처럼 사랑하면 어떨까. 밤에 쓴 많은 글이 그러하듯 이 역시 내일 아침에 읽으면 지워버리고 싶을만한 글이다. 방문자 몇 없는 블로그에서 주절거리는 것도 고민스러운데, 파워블로거들이 만천하에 글을 발행하는 용기와 배짱이 엄청나게 느껴진다.
 
언젠가부터 주일이 다가오면 마음이 불편하다. 그리고 이런 것에 불편함을 느끼게되는게 불편하다. 태어나서부터 보수교회 체제 속에서 자랐으니 '교회'라는 물리적 공간을 나와보는 것이 어색하기 짝이없다. <일단 나와 봐야 안다>는 이성복의 시 마냥 '나와 봤자 또 기어 들어가겠지만', 지금 교회 테두리 밖에서 느끼는 근원모를 죄책감은 버리고싶다. 교회 안에서나 밖에서나 평일에나 주일에나 동일하게 하나님을 만나고, 참신앙을 갖고 기쁘게 살고싶다.


예전에 스치듯 봤던 재미난 사진이 생각나 구글 이미지에서 찾아왔다.
에스컬레이터 타고 짐에 운동하러 가는 사람들, 운동은 기어코 센터 내에서만.